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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 [2010-07-11] 생명에 대하여 - 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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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작성일17-12-07 10:01 조회7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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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하여

1. 하나의 사람이 될 태아는 이미 그 사람인 것이다.

 

지난 2010년 5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관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 가톨리교회는 생명윤리법이 가지고 있는 비윤리성과 반생명성에 대해 줄곤 지적하며 개정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적, 상업적 동기와 치료의 효율성을 내세우며 결국 생명윤리법을 제정하였고, 이에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인간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몇 가지 기억하고자 합니다.

 

* 배아는 인간입니다.

생명 윤리법의 가장 큰 문제는 배아에 대한 정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윤리법은 배아는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아란 인간의 수정란과 수정된 때부터 착상 완료 이전까지의 분열된 세포군을 말한다."(제2조3항)

*​ 도대체 '인간'은 언제부터 인간일까요?

중등 생물 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생명의 단위는 세포이고 그 세포가 생명의 주체라는 점을, 따라서 세포 역시 엄연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배아는 그 시기에 이미 한 사람의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유전인자를 다 가지게 되고 그럼으로 한 사람의 고유한 삶(운명)이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배아가 곧 그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도 예외 없이 배아였습니다.

배아는 자신이 가진 유전적 특성을 경탄할 만한 생명력을 가지고 발전시켜나가며 한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준비해 나갑니다. 이를 어떻게 단순한 세포덩어리라 할 수 있으며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교도권은 여기에 대해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임신되는 그 순간부터 한 인격으로서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하며 따라서 임신되는 그 순간부터 그 배아는 한 인격체로서 지닌 모든 침해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명의 선물 1.1)

"출생을 막는 것은 살인을 앞당기는 것이다. 출생 전이거나 후이거나 별로 차이가 없다. 하나의 사람이 될 태아는 이미 그 사람인 것이다(생명의 복음, 61항)​

 생명에 대하여

 2. 배아는 우리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온전한 인간 생명

우리 교회가 생명윤리법에 대하여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인간 배아가 우리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온전한 인간 생명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비록 0.1mm  크기의 미미한 존재인 것처럼 여겨져도 여기에는 이미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이미 인간으로서 특징인 유전자형이 이 시기에 결정될 뿐만 아니라 철학적, 신학적인 관점에서도 존재의 가장 첫 순간인 수정란에서부터 온전한 한 인간이 시작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아를 연구나 치료목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윤리법]에서는 배아를 "배아란 인간의 수정란과 수정된 때부터 착상 완료 인전까지의 분열된 세포군"(제2조 3항)으로 규정하여 배아 자체를 인간 생명이 아닌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배아를 복제하고 또 파괴하는 연구자들 자신은 생명을 만들지도 또 파괴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변명하고 있습니다.

세포덩어리를 가지고 연구했을 뿐, 인간의 생명을 건드리지는 않았다고...

그러나 복제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복제 배아는 비록 비정상적 과정일지라도 생명의 탄생 과정을 정확히 재현하며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복제양 돌리(1996년, 영국)가 만들어졌고, 또 복제 개스너피(2005년, 한국)가 만들어졌습니다. 만일 복제 배아가 생명이 아니라면 돌리도, 스너피도 생명이 아니라고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 윤리의 중심에 서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는 인간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결정적인 순간은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순간에 유일하고도 반복되어질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명과 구별되는 새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는 수정이 이루어지는 수정란의 시기를 인간 생명이 시작된 시기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신앙교리성, '인공유산반대 선언문' 참조. 인간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참조)

따라서​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수정란이나 복제된 배아)에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함은 지극히 다영한 일일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 배아에 관한 연구나 실험, 배아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의료 조작이 배아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온전성을 거스르게 되는 것이라면 우리 교회는 여기에 대해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하며 반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하여

 3 / 4.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을 중심으로

1) 우리교회은 생명을 신성(神聖)​하게 여깁니다.

모든 생명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시며 오직 하느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생명은 신성합니다.(55항)​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느님만이 그 주인이시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무죄한 인간을 직접적으로 파괴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53항)

따라서 인간 생명과 죽음은 하느님 손에, 그분의 권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시어, 지하에 떨어뜨리기도 하시며 끌어올리기도 하시는 분" (1사무 2,6)이요,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신명 32, 39)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39항).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죽이는 일은 월권행위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제5계명을 거슬러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 또 이와 비슷한 다른 모든 행위는 문명을 손상시키는 행위이며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창조주께 대한 극도의 모욕입니다.(3항). 

 

2)​ 교회는 낙태를 단죄합니다.

잉태된 생명을 쓸모없는 생명이라고 간주하거나, 또는 참을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하며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런 생명을 거부하는 ​'생명에 대한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낙태는 분명 '살인하지 말아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직접적으로 침해는 악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3항) 생명은 그 수태되는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되어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가증할 죄악이다"(62항).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새로운 사람의 한 생명이 시작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성장을 가지는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인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면 결코 그것이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 유전학은 이 자명한 불변의 원리를 확인해 준다. 이 생명체가 자라나서 충분히 독자적인 특징을 지는 한 사람이 될 프로그램이, 수태되는 첫 순간부터 수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전학은 증명해 주었다." 따라서 생명은 수태되는 그 순간부터이므로 수태되는 그 순간부터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교회는 살인을 단죄합니다.

하느님은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을 처벌하셨습니다.(7항) 살해당한 사람의 피는, 그 피가 흘렀던 땅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정의를 펼치실 것을 요구합니다.(창세 37,26; 이사 26,21;​에제24,7-8 참조) "'피는 곧 생명'(신명 12,23)이며,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은 오직 하느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 생명을 공격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의미로 하느님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9항)

4) ​교회는 안락사를 단죄합니다.

안락사란 죽음을 조절하여, 정해진 시간 이전으로 앞당기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편안하게' 끝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안락사를​ 잘 살펴보면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임을 알 수 있다."(64항) 왜냐하면 안락사란 오직 생산성이라는 기준 위에 조직되어 있는 죽음의 문화의 탓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희망이 없을 정도로 손상을 입은 생명은 더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봅니다.(64항) 안락사는 '과도한 의학적 치료'를 그만두는 것과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안락사는 하느님의 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며 그것은 인간에 대한 고의적이고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살행행위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러한 행위에 자살이나 살인에 해당하는 악의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65항) 자살은 언제나 살인이나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삶과 죽음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66항) 낙태와 안락사란, "인간이 지닌 침해할 수 없는 권리들이 엄숙하게 선포되고 생명의 가치가 공적으로 인정되는 순간에, 즉 탄생과 죽음의 순간에 부정되거나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18항)

5) 교회는 사형제도를 반대합니다.

"살인자조차도 인격적인 존엄성을 잃지 않는다.[...] 죄인을 죽이기보다는 바로잡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살인이 또 다른 살인행위를 통해서 처벌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9항) 따라서 사형은 처벌의 본질과 범위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결정해야 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미녀, 즉 다른 방법으로서는 사회를 보호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는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회는 분명히 가르칩니다.(56항)​

 

 

 

생명에 대하여 5 / 6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인간 생명의 탁월성을 가르칩니다.

1.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실 만큼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니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을 긍정하셔서 사람이 되신(육화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신"(요한 3,16)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의 근거이다.(2항)

그리스도의 피는 사랑의 위대함,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인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인간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 하는 것도 보여준다. (25항)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며, 마치 우주의 절정과도 같고, 모든 피조물 중에 최상의 것인 듯한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입니다.

 

2.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은 충만한 생명입니다.​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하느님의 생명이며 동시에 하느님 자녀들의 생명입니다.(38항) 영원한 생명, 충만한 생명이란 바로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초자연적 소명이 지닌 숭고함은, 인간 생명이 현세적 측면 안에서까지도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생명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가장 숭고한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은 그 출발도 하느님에게서 올 뿐만 아니라 그 마지막 목적 즉, 하느님을 알고 그분과 사랑의 친교를 맺는 목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38항) 따라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상으로서 신성함을 지닙니다.(39항) '살인하지말라'는 제5계명만이 아니라 십계명 모두가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보이라는 요구입니다.(41항)

3.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수정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을 지닌 존재의 모험이 시작됩니다.(60항) "출생은 막는 것은 살인을 앞당기는 것이다. 출생 전이거나 후이거나 별로 차이가 없다. 하나의 사람이 될 태아는 이미 그 사람인 것이다"(61항) 성경은 잉태, 태중의 생명 형성, 출산,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과 창조주 하느님의 활동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해서 존경심과 사랑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61항)

4. 교회는 인간 이외의 생명과 자연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교회는 전 지구적인 생태계의 위기의식에 공감하고, 다른 생명과 자연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사회적 관심](1988년)은 광범위하게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개발의 윤리적 성격에서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제반 사물들, 일찍이 희랍인들이 그것을 특징짓는 '질서'를 의미하여 '우주'(cosmos)라고 일컬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들에 대한 존중이 제외되어도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34항). 교황은 그의 첫 회칙 ​[인류의 구원자](1979년)에서 자연환경 오염의 위협을 언급하면서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 1,28)는 성경 말씀을 "인간이 현명하고 품위 있는 '주인'이자 '보호자'로서 자연과 통교하는 것이지 '착취자'나 '파괴자'로서 자연을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석하였습니다(15항).

현대 사회의 생명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는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상황을 '생명에 대한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죽음의 문화'라고 지적하고 경고하셨습니다.(생명의 복음 12항)

교회는 인간 생명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창조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인간이 되실 만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긍정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육화사상, 강생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대화 상대자'로서 영원하신 하느님의 생명에 초대된 존재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긍정된 존재요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인간 생명을 구하는 일에 헌신하였으며,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인간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는 남녀노소, 장애자, 태아, 배아의 구별이 없습니다.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준엄합니다. '이 보잘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태 18,6)



 

 

[발췌] 대구주보 2010-7-11, 7-18 , 7-25, 8-1, 8-8,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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